[NBC-1TV 이광윤 보도국장]매년 현충일에 꽃과 태극기를 든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있다. 바로 국립서울현충원 이다. 비석 마다 평균 5~6여 명의 가족이 찾는 모습을 항공촬영 하면 흡사 국가보훈처가 제작해 보급하고 있는 ‘나라사랑 큰나무’를 뿌려 놓은 듯한 진풍경 이다.그러나 올해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추모객들의 발길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썰렁함을 연출했다. 평소 주말 보다도 참배객이 적은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이런 전례 없던 현충일에 검정색 복장의 추모객들이 묘지에 모여 소박한 추모식을 엄수했다. 안보특구 1번지 JSA전우회(회장 반기호) 소속 회원들이다.이날의 추모식은 판문점 우리 지역에 잠복했던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고 이선규 김익홍 두 전우를 기리기 위해 모인 엄숙한 자리였다.전우회 반기호 회장과 고 이선규 전우의 누나 이철순(78) 여사, 현 JSA 경지대대 부대대장 신규호 소령의 인터뷰와 추모식 장면을 NBC-1TV가 단독으로 취재 해 보았다.아래 방송 창을 클릭 하시면 NBC-1TV가 단독으로 취재한 JSA전우회 추모식 방송을 시청 하실 수 있습니다
[NBC-1TV 김종우 기자]제60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여야 정당 대표, 국가유공자 등 1만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앞 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국가유공자증을 수여하고 있다.
[NBC-1TV 박승훈 기자]제60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여야 정당 대표, 국가유공자 등 1만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앞 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NBC-1TV 박승훈 기자]제60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여야 정당 대표, 국가유공자 등 1만여 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앞 광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NBC-1TV 김종우 기자]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공식 방한 중인 마키 살(Macky Sall) 세네갈 대통령이 4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 한 후 이선근 현충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정상회담을 위해 청와대로 이동하고 있다.
[NBC-1TV 육지혜 기자]마키 살(Macky Sall) 세네갈 대통령이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서울공항을 통해 공식 방한 한 후 의장대장과 함꼐 열병하고 있다.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제60회 현충일을 맞이하여 현충일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해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정종욱)와 함께 국내 최초로 ‘현충의 빛’ 점등식 행사를 4일(화) 2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 앞 선양광장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현충의 빛’ 점등식은 광복70년 기념사업의 일환인 ‘대한민국 70일간의 여정프로젝트’의 첫 시작으로 ①국가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를 담은 보훈정신 ②국민 통합을 위한 호국정신 ③ 통일의 꿈을 이뤄가려는 염원의 메시지를 담은 3개의 대형 빛줄기를 상공으로 비춰 서울 전역에서 빛 형식의 기둥을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이번 ‘현충의 빛’은 4일부터 6일까지(3일 간), 20시부터 24시까지 4시간 동안 계속된다. 점등식 행사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김자혜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 보훈단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업취지 설명, 점등 행사, 빛 드로잉 퍼포먼스 등으로 진행된다. 또한, 6월 한 달 동안 국립 서울현충원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와 국가의 소중함을 국민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 호국영웅들의 등불인 ‘추모의 빛’(태양광 LED등) 이만
[NBC-1TV 육지혜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안동의 혁신유림인 동산 류인식(柳寅植, 1865년 ~ 1928년, 건국훈장 독립장)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1865년 5월 3일 경북 안동 예안에서 출생한 선생은 퇴계 선생의 정통을 이은 정재학파 가문에서 자랐다. 1895년 일제가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오백 년 종사가 망하려는데 삼천리 강역에 한 명의 의사도 없단 말인가?”하고 비분강개하며 청량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3년 신채호 선생과의 만남 이후 교육구국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1907년 김동삼, 이상룡 선생과 근대적 중등교육과정의 협동학교를 설립․운영하였다. 협동학교 졸업생들은 3․1운동 등 독립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개벽지에서 “한 사람의 힘으로 지방을 일으켰다.(‘1인이 가이흥향’)”라고 평할 정도로 선생의 협동학교 운영은 신교육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선생은 1911년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로 이주하여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등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참여하였으나 1912년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일시 귀국하였다가 일제에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