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BC-1TV 김서경 기자] 1990년 1월, 3당(민정, 민주, 공화) 합당에 반대하며 김영삼 총재와 인연을 끊은 후 홀로서기에 나섰던 정치인 이기택은 제1야당 총재로 새로운 정치 지도자의 길로 나섰다.
그는 새 정부가 5.18 항쟁을 인정하면서도 이에 상응한 법적 처리가 미흡하자 대전역광장과 부천역, 서울역광장에서 대규모 항의집회를 주도하며 거대 야당에 각을 세우며 대정부 투쟁을 이끌었다.
이 무렵, 본사 이광윤 보도본부장이 정치부 기자시절 이 총재의 자택을 출입하며 부인 이경의 여사와 가졌던 허심탄회한 인터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이경의 여사는 당시, 자신의 신장을 독립유공자 가족에게 기증하는 등 헌신적인 사회봉사를 펼쳤으나 정치인 내조쇼(?)라는 색안경으로 보는 일부 시각에 상처를 받기도 했으며, 이기택 총재 역시, 원칙적인 강고함으로 급변하던 현실정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끝내 정계를 떠났다.
이후, 이 총재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해외한민족교육진흥회 이사장, 4‧19혁명공로자 회장 등으로 활동하다 2016년 2월 20일 별세했으며 현재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1937년 경상북도 포항 출생인 이기택 총재는 1960년 고려대학교 학생 특위 위원장으로 4‧19 혁명을 주도하였다. 이후 4‧19세대 대표 주자로 정계에 입문, 1967년 최연소 국회의원(제7대)으로 당선되어 1992년 14대까지 7선 의원을 역임했다. 신민당 사무총장, 통일민주당, 통합민주당 총재를 지냈으며 13대 국회에서 5공 비리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