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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소식

[속보]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별세

-고인이 존경했던 고모 이계단 여사와 이광윤 보도본부장의 일화로 보는 '이해찬 가족사'

[NBC-1TV 박승훈 기자]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4시 48분경) 별세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을 위해 지난 22일(현지시각) 베트남 호찌민에 도착했던 이해찬 수석부의장은 해외 동포들과 소통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공식 일정에 들어갔으나 도착 다음날인 23일,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고, 급히 현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으며,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이틀간 치료를 받다가 25일 오후 타국에서 운명했다.

위와 같은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별세 속보를 긴급 전송 하려던 순간 본사 이광윤 보도본부장이 의외의 보도지침을 내렸다.

"단순 속보가 아니라 함께 포함해야 하는 인물이 있다"라며 의외의 개인사를 소개했다. 사연은 이광윤 보도본부장과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고모 이계단 여사로부터 시작된다.

1992년 4월 18일, 당시 사회부 기자였던 이광윤 보도본부장이 수유리 4·19 묘지를 찾아 기념식 하루 전 모습을 스케치하던 중 이상한 모습을 포착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한 노인이 묘지 왼쪽 상단에서 손 편지를 읽고 있었다. 그리고는 호미로 묘비 앞 땅을 파고 있었다.

이 보도본부장이 그 노모에게 다가가서 사연을 묻는 순간, 대학생들의 기습 집회에 대비해 현장에 출동해 있던 5명의 정보과 형사들이 주변에서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노모는 이해찬 수석부회장의 고모인 이계단 여사였다. 여사는 4·19에서 희생된 이근형 열사의 어머니로 이근형은 유복자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평양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들 이근형 하나만 데리고 서울로 와서 살았는데, 4·19 때 아들이 없어져서 가족들이 찾아다녔더니 동대문경찰서 앞에 총을 맞고 죽어 있던 시신을 찾았다며 오열했다.

그리고 읽고 접어 둔 손 편지를 다시 꺼내 소리 내어 읽었다. 편지는 그리운 근형 아로 시작되었다. 편지 내용에 17일 청양중학교 학생 두 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왔다는 내용이 있었다.

편지 낭독 후 이 본부장이 이계단 여사에게 장학금에 대해서 물었더니 이 여사는 "4·19 유가족 연금을 한 푼도 안 쓰고 종잣돈을 만들어서 그 이자로 청양 학생들에게 '이근형 4·19 장학금'을 준다."라고 답했다.

이 여사는 아들이 차디찬 땅에 묻혀 있는데 “어미인 내가 어떻게 불을 때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느냐”며 한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살면서 생활비는 비료포대나 쌀포대를 뜯어 종이봉투를 만들어 판 돈을 사용했고, 남은 돈은 다시 장학금에 보태기도 했다.

사연을 종합하면 이계단 여사는 4·19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17일 날에는 청양중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18일 상경해서 묘지 비석 앞에서 본인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주고 그 편지를 다시 비석 옆에 묻어주는 일을 매년 반복하셨다.

이광윤 보도본부장과 이계단 여사는 1992년부터 매년 4월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90년대 말 4월 같은 날, 묘지를 찾았는데 이 여사가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하니 이 여사가 의식이 없을 만큼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이 여사님을 뵙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뒷날 거행되었던 4·19 의거 추모식에 참석했던 이광윤 보도본부장 앞에 깜짝 놀라는 일이 벌어졌다.

조카 이해찬이 의식이 없던 고모 이계단 여사를 휠체어에 태우고 추모식장에 나타난 것이다. 조카가 고모의 건강 상태로 봤을 때 이번 추모식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리한 동행을 한 것이다.

이광윤 보도본부장이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계단 여사의 손을 잡았다.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의식이 없던 이계단 여사가 눈을 뜨고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조카 이해찬도 이광윤 보도본부장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개월간 의식이 없었던 환자가 묘지에서 의식을 찾는 모습은 기적 그 자체였다. 그 모습은 이광윤 보도본부장의 카메라에 생생하게 찍혔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았던 이계단 여사는 바로 의식을 잃고 투병하시다가 그해 사망하셨다.

고모 이계단 여사와의 인연으로 시작된 이 본부장과 이해찬 수석부의장과의 인연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나면 정치적인 얘기는 일절 없었다. 그저 고모 이계단 여사의 자식사랑과 교육적인 사명감을 붙태웠던 이 계단 여사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

고인이 1995년 6월, 민선 1기 서울시장에 출마했던 조순 서울시장 캠프에서 전략을 담당했을 때 이광윤 보도본부장이 조순 후보에게 있었던 민감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조 후보자가 바로 앞에 앉은 고인에 답하라고 하자 이 본부장이 "우리는 정치 얘기하는 사이가 아니라"며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캠프 관계자에게 답을 요청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 이해찬 수석부의장의 공과에 대한 찬반이 분분하다. 고인은 생전에 고모 이계단 여사를 존경한다는 뜻을 수 없이 밝혔다.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한 정치인의 모습에 고모 이계단 여사의 업적은 발로 뛰며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에게는 놓치고 싶지 않은 입체적인 역사로 느껴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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