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는 김만술(金萬述) 육군 대위를 5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47년 6월 국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부산에 주둔하던 제5연대에 배속된 김만술은 1948년 ‘여순 10․19사건’ 진압작전과 태백산맥 등지에서 준동하던 공비토벌작전에 기관총 사수로 참여하였다.6․25전쟁이 발발한 후 평양 탈환작전을 비롯한 주요 전투에 참전하여 탁월한 지휘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53년 7월 15일 특무상사에서 육군 소위로 현지 임관되어 제1사단 제11연대 소대장으로 부임하였다.부임 당일 소대원 35명과 함께 베티고지를 지키고 있던 2소대장 김만술 소위는 야음을 이용해 인해전술로 공격해오던 중공군 제1군 예하 제1사단의 2개 대대 규모의 적을 맞아 5차례의 공방전을 벌이면서 13시간 동안 치열한 혈전을 전개하여 적 314여명을 사살하고 450여명을 부상시키는 전공을 거두었으며, 이 공훈으로 미국 십자훈장(‘54)에 이어 국군 최고의 영예인 금성태극무공훈장(’54)을 수여받았다.베티고지는 임진강 지류가 남북으로 흐르는 가운데 표고 120~150m의 봉우리 3개로 형성된 전초진지로서 방어를 담
[NBC-1TV 김은혜 기자]국회 국방위원회는 13일 김관진 국방장관을 출석 시킨 가운데 긴급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향후 대응에 대한 송곳 질문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질의를 통해 "미사일을 갖고 있으면 위협이지만 그걸 쐈다면 도발행위다. 국제사회에 대한 도발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대한 도발이니 응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우리에게 물리적 타격을 가하지는 않았다"며 "군사력으로 응징할 계획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그는 이어 "미사일 발사 실패로 북한의 체면이 손상됐다"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추가적인 미사일 실험도 할 수 있고,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고 추측 했다. 한편 이날 국방위 회의에서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됐다.
[NBC-1TV 김종우 기자]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중기(5~10년 복무)․장기(10년 이상 복무) 복무 제대군인증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롭게 제작하여 배부한다고 2일 밝혔다.이번에 변경되는 제대군인증은 국가보훈의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태극기와 나라사랑큰나무를 디자인에 반영하였고, 기존에 종이로 제작ㆍ배부하던 것을 플라스틱 재질로 변경하여 위조ㆍ변조와 훼손을 방지하였다.또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유사증명서(국가유공자증, 공무원증 등) 수준으로 내용을 간소화하였다.변경된 제대군인증은 이미 제대군인으로 등록 된 경우 사진(3×4㎝) 1매를 가까운 보훈(지)청에 제출하면 즉시 재발급 받을 수 있다.등록이 안 된 제대군인은 보훈관서에 비치된 제대군인지원신청서, 사진(3×4㎝) 1매, 전역증 사본 또는 병적증명서를 제출하면 15일 이내에 제대군인으로 등록과 동시에 제대군인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제대군인증은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이 취․창업 교육 등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기 위하여 등록하면 발급되는 신분증으로 98년부터 발급했으며 현재까지 약 4만 9천 여 장이 발급되었다. 국가보훈처는 제대군인들을 위해 취ㆍ창업 등 생활안정
[By NBC-1TV H. J Yook]The New Zealand Prime Minister, RtHon John Key will attend a wreath laying ceremony at the ANZAC Memorial in Kapyeong at 1045hrs on Sunday 25 March 2012, to commemorate the sacrifices made by New Zealanders in the Korean War, 1950 –53. The ceremony will be attended by the Minister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 Hon Park, Sung-Choon, the Australian Senior Trade Commissioner, Mr Martin Walsh, Chairman Chi of the United Nations Allies Korean War Allies Association, The Acting Mayor of Kapyeong, Mr Bae, Soo-Yong, LTGEN Kim, Hyun-Jip, Commander ROK (A) V Corps, and ot
[NBC-1TV 박승훈 기자]서울지방보훈청(청장 최완근)은 27일 오후 2시 서울지방보훈청(용산 소재)에서 오산중학교 등 20개 초․중․고등학교와 '청소년 참여 보훈선양 프로그램' 협약식을 체결한다고 24일 밝혔다. 이날 협약은 지난해 12월 '나라사랑 정신 함양 프로그램 참여학교 학교장 간담회' 후속 조치로 이루어진 것으로 3월 이내 추가적으로 30여개 학교와 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국가보훈처는 청소년의 나라사랑하는 마음 함양과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하여 '청소년 참여 보훈선양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전국 학교에 제공하고 있으며, 학교 자체 운영 프로그램에 대하여도 지원을 할 계획이다.'청소년 보훈선양 프로그램'은 나라사랑 연수교육, 청소년 보훈캠프, 독립군체험학교, 우리고장 현충시설탐방, 청소년 보훈봉사프로그램, 나라사랑실천학교 운영, 호국․보훈행사 참여, 나라사랑태극기 달기 운동 등 생활 속에서 청소년들이 나라사랑체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용산고 교장은 “입시에만 매달려 전인교육이 어려운 요즘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통해 지난 역사와 나라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이번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는 몽클라르(Ralph Monclar) 프랑스 육군 중령을 2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몽클라르 중령은 프랑스군 대대의 초대 지휘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각종 무공훈장을 수여받은 전쟁영웅으로 육군중장으로 전역하였다.6ㆍ25전쟁이 발발하자 “저는 육군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곧 태어날 자식에게 제가 최초의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며 육군 중령으로 자청하여 유엔군으로 참전하여 프랑스 대대를 지휘하게 된다.유엔군 프랑스대대는 1951년 1월 한국 전선에 투입된 이래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3차에 걸쳐 부대를 교체하며 힘들고 어려운 전투를 계속하였다.지원병만으로 구성된 프랑스 대대는 한국에 도착한 직후인 1951년 1월7일 부터 2월 11일까지 전개된 일련의 전투에서 몽클라르 중령의 지휘 하에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강력한 공산군의 공격에 맞서 방어진지를 고수하는 전공을 세웠다. 특히 1951년 2월 13일부터 17일까지 계속된 지평리 전투에서는 미 제2사단 제23연대의 일원으로 험난한 지형
[NBC-1TV 박승훈 기자]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총장 겸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시고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성재 이동휘 선생 77주기 추모식'이 31일 오후 2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성재이동휘선생기념사업회(회장 유준형) 주관으로 열린다.이 날 추모식은 윤두섭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기념사업회원, 하빈이씨 종친회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전봉독, 기념사업회장 식사와 서울남부보훈지청장의 추모사, 헌화․분향 등으로 진행되며, 추모식에 이어 위패가 모셔진 충열대 무후선열제단을 참배할 계획이다.이동휘 선생(1873. 6.20~1935. 1.31)은 함남 단천에서 출생하였으며, 1899년 한성무관학교(漢城武官學校)를 졸업하여 1902년부터 강화도 진위대장(進衛隊長)으로 활동하다 1906년 계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군직을 사임한 뒤 강화도에 보창학교(普昌學校)를 설립하는 한편,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결성에도 참여하는 등 민족주의교육과 구국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1908년 서북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안창호 등과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여 계몽운동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피체되어 황해도 무의도에 유배
[NBC-1TV 박승훈 기자]국가보훈처는 필사즉생 해병대의 전설 김종식 해병대 대령을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한 김종식 해병대 대령은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후, 중국에 머물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 1948년 3월 해군사관학교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입대, 같은해 9월 해군소위로 임관한 그는 이듬해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1949년 4월 15일 해병대가 창설될 때까지 활약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진동리지구 전투에 참전한 그는 수류탄전을 전개하는 과감한 공격으로 적 정찰대대를 기습 타격하여 마산으로 통하는 요충지인 진동리를 확보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며, 그 전공으로 전 대원이 1계급 특진하였다. 1952년 3월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비장한 결의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으며, 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고 해군소령 김종식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 놓고 출전하는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김종식 대령은 해병대 최초의 상륙작전인 통영상륙작전에 이어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해